“폭락장은 언젠가 옵니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곱버스에 물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본 생각일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계좌를 열 때마다 한숨이 나오는 수준의 손실을 들고, 몇 년을 그 문장 하나로 버텼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저는 “버티면 된다”는 판단을 한 번도 계산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해봤습니다. 이 글은 그 계산의 기록입니다. 결론이 꽤 아프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주세요.
[30초 요약] 곱버스는 들고만 있어도 변동성 때문에 매년 10~20%씩 녹는 구조입니다. 80% 손실을 본전으로 되돌리려면 코스피가 IMF급(-60% 이상)으로 무너져야 하고, 그래서 수학적인 답은 “버티기”가 아니라 “남은 돈을 옮기기”입니다. 아래에 그 계산 과정을 전부 보였습니다.
곱버스는 왜 가만히 있어도 녹을까
곱버스(인버스 2배 ETF)는 “지수가 내리면 2배로 버는 상품”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정확히는 ‘하루’ 등락률의 정반대 2배를 따라갑니다. 이 ‘하루’라는 단어가 함정의 전부입니다.
간단한 숫자로 보겠습니다. 코스피가 오늘 10% 내렸다가 내일 회복했다고 해보죠.
지수: 100 → 90 → 다시 100. 시장은 제자리입니다.
곱버스: 첫날 +20%로 120. 둘째 날 지수가 +11.1% 오르니 곱버스는 -22.2%. 120 × 0.778 = 93.4.
시장은 그대로인데 곱버스만 6.6% 사라졌습니다. 이게 딱 이틀치입니다. 시장은 매일 오르내리니까, 이 손실은 매일 조용히 쌓입니다. 전문용어로 ‘변동성 끌림’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냥 ‘기다림의 요금’이라고 부릅니다. 코스피 수준의 변동성이면 시장이 제자리걸음만 해도 이 요금이 연 10% 안팎입니다.
하락장을 ‘정확히 맞혀도’ 손해라면 믿으시겠어요?
여기까지는 이론이고, 저는 실제 데이터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코스피 지수 약 29년치(1996~2026)를 받아서 시뮬레이션을 돌렸습니다.
조건은 곱버스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줬습니다. 시장이 꺾인 구간(50일 이동평균선 아래)에만 골라서 곱버스를 드는 전략입니다. 하락장을 미리 알고 들어가는, 현실엔 없는 예지력을 준 거죠.
결과입니다.
같은 하락 구간에 그냥 현금을 들고 있었다면: 29년간 연 10%대 수익.
같은 구간을 곱버스로 채웠다면: 29년 수익률 사실상 0. 게다가 중간에 계좌가 고점 대비 95% 가까이 녹는 구간을 지납니다.
하락장을 족집게처럼 맞혀 들어가도 이렇습니다. 이유는 하나예요. 하락장은 곧게 떨어지지 않고 폭등을 섞어가며 떨어집니다. 그 폭등일마다 곱버스는 2배로 얻어맞고, 위에서 본 ‘요금’은 변동성이 클수록 비싸지거든요.
‘본전까지 버티기’의 가격표
이제 물린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계산입니다.
계좌가 80% 손실이라고 해보죠. 본전이 되려면 남은 돈이 5배(+400%)가 되어야 합니다. 반토막이면 2배(+100%)면 되지만, 80% 손실은 5배가 필요합니다. 손실이 깊어질수록 필요한 수익률은 가파르게 커집니다.
그럼 곱버스가 +400%를 내려면 코스피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변동성 요금을 보수적으로만 반영해도 지수가 60% 이상 무너져야 나오는 숫자입니다.
코스피가 고점에서 60% 넘게 빠진 건 IMF 외환위기급 사건입니다. 즉 ‘본전 탈출’의 조건이 IMF의 재현인 셈인데, 솔직히 그런 세상이 오면 곱버스 계좌가 문제가 아닐 겁니다.
그래서, 남은 돈으로 뭘 할 것인가
여기서 관점을 하나 바꿔야 했습니다. 이미 난 손실은 어떤 상품으로도 빨리 복구되지 않습니다. 그건 지나간 돈이고요. 지금 결정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남은 돈을 어느 통에 둘 것인가”뿐입니다.
남은 돈을 곱버스에 계속 두면, 위의 요금이 계속 부과됩니다. 5년이면 기대값 기준으로 남은 돈의 3분의 1 수준까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같은 돈을 평범한 지수 상품으로 옮기면 5년 뒤 1.5배 안팎을 기대할 수 있고요. 같은 돈의 5년 뒤가 통 하나 차이로 3~5배 벌어집니다.
수학적인 답은 명확합니다. 옮기는 것.
다만 저도 겪어봐서 압니다. 손실 확정 버튼은 계산과 별개로 정말 누르기 어렵습니다. 그게 힘들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매주 월요일에 남은 수량의 3분의 1씩 판다” 같은 기계적인 규칙을 정하고, 판단은 규칙에게 맡기는 겁니다. 저는 이 방법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참고로 미국 금융감독기구(FINRA·SEC)는 2009년에 이미 이런 상품에 대해 “하루 이상 보유에 부적합할 수 있다”는 공식 경고를 냈습니다. 애초에 설계 자체가 며칠씩 들고 있는 용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혹시 지금도 “버티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계셨다면, 오늘 밤 계산기를 한 번만 두드려보세요. 저는 그 계산을 3년 늦게 했고, 그 3년이 제일 비쌌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지수가 원래 자리로 돌아오면 곱버스도 돌아오나요? 아니요, 이게 가장 흔한 오해입니다. 곱버스는 ‘경로’에 따라 값이 정해지는 상품이라, 지수가 제자리로 와도 그 사이 오르내림이 많았다면 곱버스는 더 낮은 곳에 있습니다. 위의 100→93.4 예시가 정확히 그 경우입니다.
2배가 문제라면 1배 인버스는 괜찮은가요? 요금이 절반쯤 싸질 뿐, 구조는 같습니다. 제가 같은 29년 데이터로 1배 인버스를 돌려봐도 그냥 현금을 드는 것보다 연 4%포인트 가까이 뒤졌습니다. 하락 방어가 목적이라면 ‘현금 비중 조절’이 수수료 없는 인버스입니다.
그래도 폭락 직전이라는 확신이 들면요? 그 확신이 진짜라면 인버스보다 보유 주식을 파는 게 낫습니다. 파는 건 비용이 거의 0인데, 인버스는 확신이 틀렸을 때 요금까지 이중으로 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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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특정 상품의 매수·매도 권유가 아닙니다. 시뮬레이션은 과거 데이터 기준(거래비용 왕복 0.05% 가정)이며 미래 수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